꽉 쥔 손을 펼 때 비로소 시작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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꽉 쥔 손을 펼 때 비로소 시작되는 삶

현대인의 일상적 고민과 빌립보서의 초청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저마다 깊은 내면의 무게와 씨름하며 살아간다. 남들보다 더 많은 자격증과 경력을 적어내야만 겨우 생존할 수 있는 ‘스펙’ 쌓기의 압박, 갈등을 마주하고 풀어내기보다 아예 관계를 끊어버리는 ‘손절’의 피로감, 그리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며 애써도 끊임없이 밀려오는 미래에 대한 염려가 바로 그것이다. 믿음이 깊어질수록 기도제목이 늘어나고, 그만큼 염려의 영역도 함께 넓어지는 역설 앞에서 우리는 종종 무력감을 느끼곤 한다.

그러나 2천 년 전, 로마의 차갑고 어두운 감옥에 갇혀 내일을 기약할 수 없었던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을 향해 놀라운 고백을 건낸다. 그는 쇠사슬에 매인 죄수의 신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기뻐하고 또한 기뻐하리라"라며 꺾이지 않는 기쁨과 평안을 노래한다.

어떻게 이런 고백이 가능했을까? 김하람 목사의 빌립보서 강해 메시지를 바탕으로, 고난과 불안의 시대를 건너게 하는 4가지 역설적 통찰을 나누고자 한다. 이 깊은 통찰들은 묶여 있는 우리의 일상을 해석하고, 꽉 쥔 주먹을 풀어 참된 자유로 나아가게 하는 영적 열쇠가 되어줄 것이다.

쇠사슬이 길을 만든다: 갇힘은 후퇴가 아닌 ‘군사적 진전’이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 투옥되어 쇠사슬에 매였다는 소식은 표면적으로 사역의 중단이자 명백한 후퇴처럼 보였다. 하지만 바울은 그 고난 한가운데서 도리어 ‘기쁨’을 고백한다.

눈이 수북이 쌓이던 춘천 산골 마을의 겨울을 떠올려 본다. 평소 타이어에 감는 쇠사슬(스노우 체인)은 걸리적거리고 차체를 흔드는 불편한 물건이다. 하지만 미끄러운 눈길을 마주했을 때, 그 쇠사슬은 타이어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눈을 잘게 다지며 차가 앞으로 나아갈 길을 만들어 낸다. 바울을 죄어오던 쇠사슬 역시 복음의 발걸음을 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도리어 거친 세상 한가운데 복음의 길을 내는 도구가 되었다.

"형제들아 내가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 전파에 진전이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빌 1:12)

여기서 바울이 사용한 '진전(프로코페, prokopē)'이라는 단어는 패배한 죄수의 언어가 아니다. 이는 전방에서 칼과 방패 대신 도끼와 삽을 들고 로마 전차가 나아갈 군사도로를 개척하던 '공병대(Engineers)'의 군사 용어이다. 공병대는 험한 산을 깎고 나무를 베며 흙을 다져 탱크가 지나갈 고속화도로를 만드는 부대이다. 바울의 매임은 사역의 후퇴가 아니라, 복음의 군사도로를 개척하는 승리의 진전이었다.

실제로 바울이 갇힘으로써 복음은 세 가지 방향으로 나아갔다.

  1. 전에는 접근조차 불가능했던 로마 시위대 안과 황제의 측근 등 고위직들에게 복음이 직접 전파되었다.
  2. 바울이 과거 빌립보 감옥에 갇혔을 때 간수의 집안이 구원받았던 역사를 기억한 성도들이, 그의 투옥 소식을 듣고 겁 없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3. 바울에게 괴로움을 더하게 하려고 순수하지 못한 투기와 분쟁으로 경쟁적 전도를 하던 자들조차 결과적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게 되었다.

바울이 자신의 명예나 평안보다 '내 안의 그리스도'를 우선시했기에, 시기 어린 경쟁조차 복음의 진전으로 바라보며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고난을 복음의 길로 해석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강해를 전한 김하람 목사 역시 선교사 자녀(MK)로 자라며 영국과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를 거쳐 초등학교만 9번을 전학해야 했던 어린 시절을 보냈다. 낯선 땅에서 겪어야 했던 정체성의 혼란과 희생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기쁨’이 아닌 ‘피하고 싶은 중압감’으로 여기게 만들었다.

그러나 훗날 태국 선교지에서 만난 한 현지인 목회자의 모습이 그의 시각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다. 모든 사회적 특권을 내려놓고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던 그 태국 목회자는, 수많은 거절과 낙인의 흔적이 빼곡히 기록된 ‘구글 맵 복음 지도’를 보여주며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 벅찬 표정 앞에서 비로소 깨닫게 된 것이다. 고난의 쇠사슬을 감당하는 것은 억울한 희생이나 부담이 아니라, 십자가 사랑의 대로를 함께 넓혀가는 영광스러운 ‘특권’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꽉 쥔 주먹을 펼 때 비로소 잡는 것: ‘손절’의 시대에 손을 펴는 용기

갓 태어난 신생아는 본능적인 움켜잡기 반사신경 때문에 주먹을 꽉 쥐고 잘 펼지 못한다. 그리고 그 꽉 쥔 주먹을 허공에 휘두르다가 옆에 누워 있는 부모의 턱을 치곤 한다. 의도하든 그렇지 않든, 이기심과 헛된 영광을 움켜쥐려 꽉 쥔 우리의 손은 결국 공동체와 이웃에게 상처를 주는 주먹이 된다.

오늘날 우리는 갈등을 마주하여 풀어내기보다 손해를 피하려 관계를 완전히 끊어버리는 '손절매(손절)의 시대'를 살아간다. 상처받기 두려워 공동체에 깊이 속하기를 거부하고 혼자 신앙생활을 하려 하며, 심지어 사람과의 관계에서 오는 피로감을 피해 AI에게 고민을 털어놓는 것이 편하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헛된 영광('케노독시아')을 움켜쥐려 주먹을 쥔 채로는 그 누구와도 따뜻한 손을 맞잡을 수 없다.

바울은 이러한 우리를 향해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고 초청한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본래 하나님의 본체이신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자격이 충분하셨지만, 그것을 손으로 움켜쥐지 않으셨다. 오히려 자신의 자위를 비워('케노시스') 종의 형체를 가지셨고, 십자가의 수치스러운 자리까지 스스로를 낮추셨다. 빈 손을 꽉 쥐고 허영을 향해 주먹을 휘두르던 우리와 달리, 모든 것을 가지신 주님은 펴신 손으로 십자가의 못 자국을 감수하시며 우리를 붙잡아 주셨다.

김하람 목사 역시 군 제대 후 신학대학원을 준비하던 20대 후반, 서울의 모교회에 다니면서도 내면의 허영 때문에 선뜻 셀 모임(목장)에 참석하지 못했던 경험을 고백한다. 무언가 완벽히 갖추어진 모습으로 나타나야 한다는 그릇된 자존심이 그를 홀로 예배만 드리고 돌아가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 냉소와 허영의 벽을 무너뜨린 것은, 아무런 자격도 묻지 않고 먼저 손을 내밀어 모임으로 이끌어준 한 친구의 따뜻한 손길이었다. 자격이 갖춰지기를 기다리는 대신, 꽉 쥔 손을 펴서 다가간 그 작은 용기가 그를 진정한 공동체의 복판으로 복귀시켰다.

공동체를 회복시키는 비움의 역사는 거창한 결단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얼굴이 보이지 않는 지체에게 먼저 던지는 따뜻한 연락 한 통, 내 허영의 주먹을 풀고 내미는 작은 손길 하나가 '손절의 시대'를 이기는 그리스도의 계절을 불러온다.

모든 스펙을 청산한 이유: ‘플러스 알파’의 불안에서 벗어나는 법

현대 사회는 끊임없는 자격 증명을 요구한다. 재단법인 '교육의봄'의 조사에 따르면, 기업이 채용 공고에서 요구하는 스펙 항목은 평균 2.3개에 불과하지만 지원자들이 입사지원서에 실제 적어내는 스펙은 평균 12.7개에 달한다고 한다. 요구치보다 5배나 많은 '플러스 알파'를 적어내야만 겨우 살아남는 증명의 압박 속에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불안은 신앙생활에도 침투하여, 신앙 연차나 직분, 사역의 열심마저 나의 영적 자격증으로 삼으려는 '종교적 스펙'의 굴레를 만든다.

하지만 바울은 당시 사회에서 가장 완벽한 스펙을 가졌던 사람이다. 팔일 만의 할례, 이스라엘 족속, 베냐민 지파,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흠이 없는 자였다. 그러나 바울은 이 모든 자랑거리를 '해(손실)'로 여기고 '배설물'로 버렸다.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빌 3:8)

바울이 스펙을 해로 여긴 것은 감정적인 체념이나 자포자기가 아니었다. '해로 여겼다(헤게오마이)'는 냉정하게 계산기를 두드려 장부를 다시 적었다는 뜻이다. 온라인 쇼핑몰 장바구니에 수많은 상품을 담아두었다가, 마침내 가장 좋은 단 하나의 물건을 발견하고는 망설임 없이 '전체 삭제'를 누르는 것과 같다. 비워낸 것은 손해가 아니라, 가장 뛰어난 가치를 얻었기에 거친 당연한 정리이다.

이것을 요즘 시대의 언어로 '역체감'이라 부른다. 비할 데 없이 뛰어난 본질을 경험하고 나면, 과거에 최고라 여겼던 것들이 얼마나 보잘것없었는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는 현상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가장 고상한 지식을 맛본 바울에게, 자신이 쌓아 올린 스펙은 그저 무익한 '배설물'에 불과했던 것이다.

비유하자면, 공항 출입국 심사대에서 나를 증명하는 것은 그동안 쌓아온 수많은 자격증이 아니라 정부가 발급한 '여권' 하나면 충분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스스로 쌓아 올린 스펙의 탑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대가를 치르고 발급해 주신 '하늘의 시민권(여권)'(빌 3:20)으로 이미 완성되었다. 더 이상 스스로를 증명하기 위해 불안해하며 '플러스 알파'를 찾아 헤매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염려하지 말라는 말이 더 염려될 때: 문제 해결을 넘어선 ‘마음의 보초병’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성경 구절은 때로 염려의 수렁에 빠진 이들에게 위로가 아닌 또 하나의 숙제나 부담으로 다가온다. 2024년 갤럽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 성인의 39%가 하루의 많은 시간을 걱정과 염려 속에 보낸다고 한다. 실제로 사랑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목장과 교회를 향한 기도의 자리가 깊어질수록 기도의 제목과 함께 염려의 영역도 함께 넓어지는 것이 정직한 현실이다.

그러나 바울은 염려를 혼자 움켜쥐고 있지 말고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아뢰라고 권면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빌 4:6)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필요한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신다(마 6:8). 그럼에도 우리가 아뢰어야 하는 이유는, 아룀을 통해 우리의 시선이 문제에서 하나님께로 옮겨가고 내면의 체질이 변화되기 때문이다.

감사함으로 아뢸 때 주어지는 약속은 당장의 즉각적인 환경 변화가 아닐 수 있다. 대신 하나님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 4:7)고 약속하신다.

여기서 '지키신다(프루레오, phroureo)'는 말은 로마 군대의 보초병(파수꾼)이 성문을 지키는 모습을 뜻하는 군사적 메타포이다. 하나님의 평강이 보초병처럼 딱 서서, 염려와 부정적인 상상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침노하지 못하도록 단단히 파수해 주시는 것이다.

태어난 지 이틀 만에 신생아 난청 재검 판정을 받고, 결국 100일 만에 최종 고도난청 확정을 받기까지 깊은 수심을 지나야 했던 김하람 목사의 고백은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 고통의 시간 동안 기도는 "아들의 귀를 들리게 해달라"는 간구를 넘어,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삶이 되게 해달라"는 깊은 아룀으로 바뀌었다. 즉각적인 문제 해결을 넘어, 아들의 삶과 교회의 미래를 지키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믿는 평강이 마음을 파수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평강의 하나님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에 계셨다. 20년 전 춥고 차가운 미완공 콘크리트 벽 앞에서 선한목자교회 성도들이 눈물로 적었던 염려 어린 기도제목들이, 세월이 흘러 최근 본당 보수공사 과정에서 외벽을 뜯어낼 때 원형 그대로 눈앞에 드러났다. 차가운 콘크리트 벽에 새겨졌던 성도들의 염려는 사라지지 않고, 20년의 부흥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증언하는 가장 거룩한 '믿음의 유산'으로 변해 있었다. 하나님의 평강은 이미 20년 전부터 그 보초병의 자리를 지키고 계셨던 것이다.


우리가 마주한 삶의 고난과 불안을 건너게 하는 빌립보서의 4가지 반전 통찰은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다.

  1. 고난의 쇠사슬은 사역의 갇힘이 아니라, 복음의 대로를 개척하는 공병대의 군사적 진전이다.
  2. 손절의 시대에 내 허영의 손을 비우고 펴는 겸손이 진짜 공동체와 관계를 회복시킨다.
  3. 스펙과 플러스 알파의 압박은 이미 발급된 하늘의 시민권(여권)을 확인할 때 비로소 청산된다.
  4. 염려의 순간 감사함으로 아뢸 때, 하나님의 평강이 보초병처럼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신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스스로를 증명하려는 처절한 몸부림이 아니다. 이미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먼저 손을 펴시고, 내 삶을 온전히 붙잡아 주신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거하는 것이다.

오늘 당신의 인생 계산기에는 끊임없이 불안을 부추기는 '플러스 알파'만 쌓여 있지는 않는가? 아니면 주님이 이미 펼쳐 보여주신 십자가 사랑 하나로 충분하다고 고백할 준비가 되셨는가?

허영과 불안으로 꽉 쥔 손을 펼 때, 비로소 주님이 준비하신 참된 평안과 기쁨의 삶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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